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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3회 정기 기사 시험을 치르고.

지난주에 정기 기사 시험을 치렀다.

시험 직전 터진 대규모 확진자 발생으로 시험이 연기되는 것은 아닌가 했는데.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시험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다만 환불이 가능하다는 문자가 와서 

공부를 등한시했거나 준비가 부족했던 사람들, 

시험보다 감염의 위험이 더 신경 쓰이는 사람들에게

갈등을 일으킬 요소가 생기긴 했다. 

나는 일단 불합격이라도 당당하게 혹은 뻔뻔하게 경험치를 쌓는다는 명목으로 

시험장을 찾기로 했다. 

 

당일 아침은 역시나 입맛은 없었는데 배고파서 두뇌회전 안 되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으로

편의점에서 대충 빵, 삼각김밥을 사놓고 주섬주섬 챙겨서 아침을 때웠다.

자격증 시험은 크게 긴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오랜만이라 약간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불쾌한 감정과 들뜬 기분이 섞인 느낌이 들었다.  

시험장은 평소보다 한산한 느낌이었지만 

차질 없이 진행시켜야 하는 입장에선 오히려 챙길게 많아서 번거 로워 보였다.

마스크를 챙겨 시험을 치게 되는 장소의 입구에 들어서서 발열체크와 손 소독을 마치고

내가 시험을 치게 될 장소를 찾았다. 

다수의 시험을 치러본 경험자답게 여유가 넘친다.

그런 여유가 공부량과 조금도 비례하지 않는 것이 약간 아쉽다.ㅋ  

나처럼 일찍 나온 수험생 몇 분도 표지판을 살펴가며 조심스러운 시간이 흘러간다. 

 

정기 기사 시험장의 안내 표지

 

시험을 치게 될 시험장, 지하에 있어서 뭔가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인테리어가 아주 전형적인 정부기관의 모습이다. 대학교 같기도 하고ㅎ
비상구답게 만들어진 계단, 시험전 내려올땐 무거웠지만 시험 후 올라갈땐 홀가분 했다. 
시험장에선 다른때보다 신경쓰이는 곳.
안내문이 언제부턴가 코로나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 제1원칙이 되었다. 그게 맞는 것이기도 하고.
1층 홀에서 발열체크가 이뤄졌다. 귀찮게 갖다대는게 아니라서 체크하는 사람도 수험자도 편했다.

요즘 사회 분위기에선 드물지만 발열체크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는데

그런 것조차 불쾌해한다면 그런 분들은 집에서만 계시는 게 어떨까 싶다.

분명히 발열체크가 아닌 뭔가 다른 언짢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출구 표지. 공손히 모은 손과 표정이 귀엽다. 같은 말이라도 이런 그림이 함께 있다면 기분이 좋다. 껄껄 웃음이 난다.

 

 

시험이 진행되기 전 익히 들어왔던 수험생 유의사항들이 낭독되었고

마스크를 제대로 써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들었다. 

조금은 내리고 써도 되지 않을까 하다가 제대로 써야 한다는

감독관의 거듭된 주문에 순종하기로 했다.

머리 쓰는 상황에서 마스크는 꽤나 더위를 유발하지만 에어컨의 힘을 빌어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답지가 배부되고 몇 가지 사항을 답지에 적게 되는데 

우습게 생각하다가 늘 실수가 발생하곤 하는 게 세상이다.

틀리면 바꿔준다는 설명을 들으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대체 누가? ㅋㅋㅋ 라며

신나게 적어나가다가 그만 실수를 해버렸다. 

수험번호를 쓰다가 칸을 착각해서 중복해서 써버린 것이다. 

(덤덤하게 답안지를 바꿔주신 감독관의 표정과 다르게 나는 굉장히 부끄러웠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완료되고 시험 시작을 알리는 감독관의 말씀과 함께 시험이 시작됐다.

시험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집중 해서 공부한 부분보다

이번엔 안 나올 거라 믿었던 곳이 배신을 때리는 바람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차근차근 풀면 역시나 해답들이 보였고 합격선 정도는 어려울 게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문제는 그건 내 기분이고 실제 문제들은 나의 정답을 비웃으며 넋을 빼놓는다. ㅋㅋ

영화 테넷의 인버전이란 개념을 먼저 알았다면

답안지를 인버전 시켰으면 어떨까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튼 시험은 그렇게 수험자에게 인과율에 대한 가르침을 주며 종료되었다.

기사 자격증 시험은 시험 마감 시간 이전에라도 답안지를 완료한 수험생이

퇴실이 가능하도록 퇴장이 가능해지는 시간을 알려주는데

나는 조금 더 쓰며 문제와 씨름하다가

후련하게 색칠을 마무리한 후 당당하게 감독관에게 답지를 제출하고 뿌듯하게 가방을 챙겼다. 

퇴실할 즈음 남은 수험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애초에 응시자도 드문드문 이었지만..

 

슬기 쉼터. 정성스레 꾸며져 있어서 찍음
평상도 갖춰져 있었다.
시험장 의자는 불편했는데 여기는 시험 후라 그랬을까 의자도 기분도 여유로웠다. 

수험장 건물 밖에 마련된 쉼터에서 얼마간 앉아서 여유를 부려보기도 했다. 

아침에 샀었던 커피를 꺼내서 노천카페에라도 앉은 것처럼.

늘상 가보고 싶었던 유럽의 어느 강변 노천 카페를 그리워하며.


시험에 대한 후련함이나 미련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뒤로한 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래도 가벼웠다.

토익점수나 필요한 지적능력, 기술 습득에 더 신경을 쓰는 게 어떤가 싶다가도 자격증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자격증을 가진다고 나의 경쟁력이 과연 우수해졌는가라는 질문에

당연하죠~라고 대답할 자신은 없지만..

 

뭐 이와는 별개로 이런 테스트들을 통과하는 것은 마냥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래도 하나의 칭호처럼

돌아봤을 때 기분 좋은 추억이 된다. 

생계나 미래가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감상에 빠지기만 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날 내가 느꼈던 기분은 지나치게 가벼웠다. 

설마 코로나는 아닐 테고 약간의 더위를 먹은 건지 아니면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던 탓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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